철학에 관하여

6월 13일, 2020

공학자들은 보통 인문학과 철학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여기에 근거는 있다고 생각된다. 공학은 돈이 되는 걸 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철학은 보통 돈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여유가 된다면 나는 공학자들이 인문학과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특히나 요즘 세상에는 컴퓨터 공학자들이 더더욱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요즘 시대에 1명의 컴퓨터 공학자는 10명, 100명, 1000명의 일을 혼자 해낼 수 있다. 더욱이 기술이 발전하다 보면 언젠가는 대체하기 힘든 직업을 더 찾기 어려워질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만드는 프로그램과 우리가 작성하는 코드가 사람들의 일자리를 뺏어 갈 수 있다.

물론 어떤 프로그램을 개발할지는 회사가 정하는 것이고 우리는 시키는 일만 하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말할 수도 있다. 왜 개발자 개개인이 죄책감을 가져야 하냐고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일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철학 없이 주어진 일만 그대로 이행한다면 기계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는가. 하나의 인격체로서 회사와 상호작용하는 역할이 아닌, 회사의 부품으로서 톱니바퀴처럼 살아가는 게 나는 더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의 주인이어야 하며, 또 주인이기에 이 일이 정말 옳은 것인지 고민을 하고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상상해 보는 과정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시대가 변하며 사라지는 직업이 존재하고, 또 새롭게 생겨나는 직업 또한 존재할 것이니 기술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나는 더욱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세상이 정말 자연의 이치처럼 당연한 것인지, 또 세상을 바꾸었었던 지난 날들의 기술 혁명이 정말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것들이었는지는 과거를 공부하고 또 스스로 많은 고민들을 해보아야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과거에 행해졌다고 해서 그 역사가 미래에 똑같이 반복되어도 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을 속죄하기 위해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앞으로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선택에 더 많은 근거를 주기 위해, 또 우리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게 하기 위해 철학을 곁에 두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칸트나 존 롤스 같은 위인들의 사상을 공부하고 이해해야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세계와 인간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만의 가치관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누구나 가까이할 수 있는 일이라 믿는다.